로마서 6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에 대해 바울이 깊이 있게 설명한 장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답게 살아가십시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분의 죽음과 연합된 자이며, 죄에 대해 죽은 자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며, 그 효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해고되었다면 그는 이미 그 상태에 있으며, 다시 출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은 자로 간주되며, 그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선언은 단지 과거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실제 방식에 영향을 주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기에,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의 유혹은 여전히 현실이고, 우리는 끊임없이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 이 싸움은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좌절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주어진 새로운 능력을 기반으로 한 싸움입니다.
바울은 죄의 지배를 허락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비록 우리가 이미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지만, 여전히 육체는 죄의 습관을 따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암에서 완치된 사람이 여전히 항암치료를 받으려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당신은 이미 나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바울 역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기억하라고 강조합니다.
세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신을 의의 도구로 드리며, 새로운 존재로서 마땅한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신학자 더글러스 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너는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철학자 칸트의 말처럼 "해야 한다는 것은 곧 할 수 있다는 뜻"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실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명령을 따를 수 있는 존재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죄에 대해 죽었다. 나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오늘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선택하겠다."
로마서 6장의 구조는 선포에서 명령으로 나아갑니다. 바울은 먼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선언하고, 그에 걸맞은 삶을 요구합니다. 우리 안에는 죄의 유혹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절망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질서, 옛 삶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죄책감 대신 은혜가 흐르고, 절망 대신 소망이 살아있는 자리입니다.
로마서 6장은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죄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는 바울의 은혜 중심 메시지를 오해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입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죄 가운데 머무르기 위해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 안에서 살기 위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날마다 그 정체성을 되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은혜 가운데 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로마서 6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깊은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