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2025년의 신년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었습니다. 몹시 춥고 눈이 오는 날씨에도 많은 교우들이 함께 참석해서 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 새벽 시간에 나누었던 말씀을 요약해서 칼럼에서 나누려고 합니다. 참석해서 말씀을 들은 분들은 다시 한번 칼럼을 보시면서 은혜를 재확인하고 새해의 좌표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칼럼을 통해 신년의 결심과 다짐들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날은 이번 신년 특별새벽기도회의 전체 주제인 “내 편이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시118:6-9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시편은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가 가장 좋아한 시편입니다. 루터는 이 시편에 대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편이다. 이 시편은 나를 수많은 환난에서 건져내었다. 황제도 왕도, 지혜자와 모사와 성도들도 나를 도울 수 없었을 때 이 시편이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님도 “시편의 모든 시가 아름답고 큰 영적 의미가 있지만 118편이야말로 나의 가슴에 가장 많이 와닿고 용기와 힘을 준다. 시편 118편은 나의 시편이다”고 강조했습니다. 2025년 새해는 우리 모두가 이 시편을 붙잡고 “여호와는 내 편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신다면 두 가지 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납니다.
첫째,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면 모든 두려움을 없애 주십니다. 두려움은 대부분 사람에게서 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윗이 만났던 가장 무서운 사람은 골리앗이었습니다. 사울왕도 기라서 같은 장군들도 모두 그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9척 장신의 장대한 힘을 무서워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칼보다 몇 배나 더 큰 무기를 무서워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칼이나 창으로 그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내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상대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킨 루터도 두려워했습니다. 이미 많은 개혁자들이 화형을 당하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황청의 권세를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루터 편을 드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온갖 절망과 상심 속에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터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고 통곡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깜짝 놀라며 누가 죽었느냐고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이 돌아가셨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루터는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님이 어떻게 돌아가셔!”라고 하면서 아내를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루터는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돌아가신 분이 아닙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내 편을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다시 시 118편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이 말씀을 의지해서 종교개혁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급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을 찾습니다. 윤한규 집사님은 클리블랜드에 아는 사람이 사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수소문 끝에 월남 파병 전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을 이끄는 회장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이지만 월남 파병 전우라는 사실 하나도 도착하는 날부터 4주간 되는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고 계십니다. 그래서 급할 때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다윗도 사람을 찾았습니다. 어려울 때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을 했습니다. 가장 가깝고 평생을 동거동락했던 사람은 요압 장군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다윗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요압은 다윗과 생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피난처가 아닙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고 피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내 편이 되신다는 것은 끝까지 나의 피난처가 되시겠다는 약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