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시인의 저무는 이 한 해에도라는 글이 있습니다. 2024년도 한 해가 벌써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조용히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는 내용인것 같아 교우들과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올해의 남은 이틀 동안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아쉬움도, 미련도 깔끔히 정리하고 새해의 새 희망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노을빛으로 저물어가는 이 한 해에도 제가 아직 살아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음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들녘의 볏단처럼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새로이 태양이 떠오르듯 오늘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제 마음의 하늘에 환히 떠오르시는 주님. 12월만 남아 있는 한 장의 달력에서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시간의 소리들은 쓸쓸하면서도 그립고 애틋한 여운을 남깁니다.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 속에 초조하고 불안하게 서성이기보다는 소중한 옛친구를 대하듯 담담하고 평화로운 미소로 떠나는 한 해와 악수하고 싶습니다. 색동설빔처럼 곱고 화려했던 새해 첫날의 다짐과 결심들이 많은 부분 퇴색해 버렸음을 인정하며 부끄러운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청정한 삶을 지향하는 구도자이면서도 제 마음을 갈고 닦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허영과 교만과 욕심의 때가 낀 제 마음의 창문은 게을리 닦으면서 다른 이의 창문이 더럽다고 비난하며 가까이 가길 꺼려한 위선자였습니다. 처음에 지녔던 진리에 대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열망은 기도의 밑거름이 부족해 타오르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침묵의 어둠 속에서 빛의 언어를 끌어내시는 생명의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이 선물로 주신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밝고 부드러운 생명의 말보다는 칙칙하고 거친 죽음의 말을 더 많이 건네고도 제때에 용서를 청하기보다 변명하는 일에 더 바빴습니다. 제가 말을 할 때마다, 주님 제 안에 고요히 머무시어 해야 할 말과 안해야 할 말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남에 관한 쓸데 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참된 사랑만이 세상과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음을 당신의 삶 자체로 보여주신 주님. 제 일상의 강 기슭에 눈만 뜨면 조약돌처럼 널려 있는 사랑과 봉사의 기회들을 지나쳐 간 저의 나태함과 무관심을 용서하십시오. 절절한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않은 채 암울한 시대탓을 남에게만 돌리고 자신은 의인인 양 착각한 저의 오만함을 용서하십시오. 전적으로 투신하는 행동적인 사랑보다 앞뒤로 재어보는 관념적인 사랑에 빠져 상처받는 모험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도 극히 선택적이며 편협한 옹졸함을 버리지 못한 채로 보편적인 인류애를 잘도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에 다 나열하지 못한 저의 숨은 죄와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과 이웃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제 작은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고 제 작은 그릇에 다 담을 수 없는 무한대이며 무한량의 신이신 주님. 한 해 동안 걸어온 순례의 길 위에서 동행자가 되어 준 제 이웃들을 기억하며 사람의 고마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처음인 듯 새롭히는 소나누빛 송년이 되게 하소서. 저무는 이 한 해에도 솔잎처럼 푸르고 향기로운 희망 노래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희망의 새해로 이어지게 하소서

  한 해를 정리하는 중요한 단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감사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살아있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살아있었기에 가족과 교우들,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결국 추억으로 삽니다. 한 해 동안 쌓아놓은 추억의 파편들이 결국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한 해를 정리하는 단어는 회개입니다.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좀 더 사랑하지 못했고, 좀 더 친절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보다는 차갑고 냉정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을 선용하지 못했고 용기를 내지 못해 앞장서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나만 의인인 채 교만했던 그리고 남의 잘못만을 지적했던 오만함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정화될 수 있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단어는 소망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반드시 내일이 옵니다. 한 해가 지나면 새해가 바로 이어서 다가옵니다. 후회와 아쉬움을 딛고 새해의 새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남은 이틀 동안 한 해를 잘 정리하시고 새해의 새 꿈을 꾸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