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 지방의 한 작은 교구의 목사에 대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목사가 젊었을 때 자신이 생각하기에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여러 번 구했지만 자신의 죄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평생 놓여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목사였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는 자신의 교인 중에 환상을 본다는 나이든 교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환상 중에 그 부인은 가끔 주님과 대화도 한다는 말이 잔잔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는 용기를 내어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부인은 목사를 반갑게 맞이하고 차를 대접했습니다. 돌아갈 무렵이 되어서야 목사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부인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부인께서 때때로 환상을 보신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가 물었습니다. “그렇답니다”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환상 중에 가끔은 주님과 대화한다는 것도 사실입니까?” “그렇답니다” 부인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번 환상 중에 주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저를 대신해서 한 가지 질문을 해주시겠습니까?” 부인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목사를 바라보았습니다. 한 번도 누구에게서도 그런 부탁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뭘 여쭈어 드릴까요?” “부인의 교구 목사가 젊었을 때 저질렀던 죄가 무엇이었는지 한 번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호기심에 가득 차서 부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선뜻 약속을 했습니다.
몇 주 후 목사는 다시금 부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또 차 한 잔을 마신 후 목사가 조금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최근에 환상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럼요”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주님과 대화도 나누셨나요?” “예” “그럼 제가 젊었을 때 저지른 죄에 대해 주님께 여쭈어 보셨습니까?” “예, 물론이죠”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는 긴장과 두려움에 마음을 졸이며 마침내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부인은 목사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부드럽게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기억하지 않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를 가장 깊은 바다 속에 던져버리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제자입니다. 수제자이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마음이 심히 번민되어 땀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는 순간에도 주님의 마음은 모른채 잠만 잤던 사람입니다. 주님이 기도를 마치시고 병사들에게 잡혀가시자 멀찌감치 서서 바라만 보았습니다. 주님이 대제사장 집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주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저주까지 하면서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의 모습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시게 됩니다. 부활하신 후 베드로와 처음으로 개인적 대화를 하시는 순간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믈으셨습니다. 무려 세 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계속 주님의 백성들을 목양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 개인적 대화 가운데 베드로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책망하는 내용이 단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했던 행동을 전혀 기억하시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후에도 베드로가 순교를 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때의 일을 한 번도 거론하신 적이 없습니다. 기억을 안하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오늘이 성탄주일입니다. 올해도 한 주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도 기억하시지 않는 잘못과 불편함들을 그대로 가지고 새해를 맞이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한 해 잘못된 것은 그대로 묻고 용서해야 합니다. 한 해를 지나면서 서로 아쉽고 불편했던 기억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도 기억하시지 않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아쉬움을 털어버리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