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하마스와의 전쟁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 사는 2백만의 팔레스타인인 사람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이 매일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성경과 너무 깊게 연관된 민족이기에 우리의 관심이 더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이해하려면 먼저 파란만장한 그들의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은 구약에서 언급된 가나안입니다. 이미 4천년 전인 아브라함때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족은 끊임없는 분쟁을 벌여온 것입니다. 3천년 전 사울과 다윗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웁니다. 그후 르호보암 시대에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이미 이스라엘 왕국 안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상당수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BC 722년 북왕국은 앗시리아에, 남왕국은 BC 586년 바벨론 멸망을 하고 맙니다.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정복을 당하고 페르시아는 마게도냐의 알렉산더에게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지방은 결국 알렉산더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BC 145년 유대인들을 봉기를 일으켜 유다왕국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세력을 키운 로마가 이 지역을 정벌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로마에 대항해 민중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로마는 디도 장군을 파견해서 10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국외로 추방을 하게 됩니다. 그 후 로마는 이 지역을 이스라엘 혹은 유다라는 이름을 완전히 빼고 팔레스타인으로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해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기구한 역사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AD 600년 경 아랍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하면서 이슬람교의 뿌리게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1차 세계 대전때까지 오스만 터키등 이슬람 세력이 팔레스타인을 1,300년 넘게 다스렸습니다. 1차 대전이 지나면서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유럽에서 일어난 시오니즘(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는 유대인 운동)과 맞물려 유대인들이 대거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2차 대전후 UN은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아랍인 지역으로 양분을 했습니다. 아랍인 지역은 대부분 요르단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이번에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자지역은 이집트의 영토로 귀속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운명이 더 비참하게 된 것은 1967년의 6일 전쟁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예루살렘과 웨스트뱅크 그리고 가자지역 모두 차지하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끊임없는 분쟁이 지금끼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들은 아랍사람이지만 국적 없는 아랍인입니다.

   사실 종교나 정치, 민족을 떠나 팔레스타인은 불쌍하고 억울한 민족입니다. 3,500년간 남의 나라 통치를 받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일제에 의해 36년간 식민지 생활을 했습니다. 그 원한과 분노가 사실 지금까지도 일본과 한국의 정서속에는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은 무려 3,500년이라 말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들 입장에 서 본다면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폭력이나 파괴로 평가절하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의 아버지로 초대 총리를 지낸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절대적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1938년 팔레스타인들의 폭동을 제압할 대책을 논하는 연설에서 한 말을 현재의 이스라엘 총리나 국민들 그리고 그들의 전쟁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새겨 들어야만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끼리는 진실을 무시하지 말자. 정치적으로 우리는 침략자이고 그들은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그들의 나라다. 이 폭동은 유대인들이 조국을 강탈하려는 데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다내 입장에서 너무 명분만 내세우면 안됩니다.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는 마음이 없이는 내 명분은 그저 폭력이 되고 상처만 될 뿐입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비로서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