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김정현 작가가 쓴 아버지라는 장편 소설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 책장에 그런 책이 있었는지도 사실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일이 아버지 날’(Father’s Day)이라 여러 가지로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던 중에 우연히 구석진 책장에서 아버지라는 소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1996년 작품입니다.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언제 어디서 구입했는지도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책 맨 뒤 표지에 나오는 발행일, 지은이, 펴낸 곳이 어디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1996820일에 첫 출간이 되었는데 불과 4개월이 지난 그해 12월에 50쇄가 인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책이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가지고 월요일에 수양관에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화요일 오전에 이 책 전체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아버지의 현실이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이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팔렸다는 것은 소설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에 자기의 실제 상황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정수는 열심히 인생 성공을 위해서 달려온 한국의 모든 아버지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불우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강한 신념과 의지로 행정고시를 준비해서 28살에 합격을 합니다. 그야말로 인생 승리였습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며 예술, 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현대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모델이 됩니다. 슬하에 딸과 아들도 두었습니다. 딸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서 서울대에 합격했습니다. 남동생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누나처럼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가정을 일구었습니다. 누가 보기에도 성공한 가정과 성공을 이룬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고 있는 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에게는 가족들도 이웃들도 모르는 깊은 고독과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너무 바쁘고 고단한 직장생활과 늘 술로 이어지는 회식 문화 속에 가정의 모든 일은 아내의 몫으로 돌려놓은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가족들이 저녁 한 번 같이 먹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이들의 입학식, 졸업식, 모든 행사는 엄마만 다녔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대학 입학식에 겨우 한 번만 참여하는 정도였습니다. 가족들의 사진에 아버지의 자리는 늘 빈자리였습니다. 사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늘 늦게 들어오는 관계로 아내도 따뜻한 눈길 한 번 주는 적이 없었습니다. 아들과 딸은 아버지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습니다. 아내와 방을 따로 쓴 지도 1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성공한 공무원입니다. 부서에 직원들도 많이 거늘였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늘 초라한 남편이요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였던 친구의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췌장암 말기였습니다. 남은 기간이 5개월 밖에 없는 현실이 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너무 충격을 받은 정수는 가족들에게는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 충격을 가라앉히고,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가족들의 냉대를 더욱 심해졌습니다. 딸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매몰찬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딸의 편지를 받고는 아버지는 오열하고 맙니다. 그는 죽는다는 사실보다는 가족들에게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고독과 외로움이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의사인 친구가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그다음부터 온 가족이 하나가 되는 모습으로 장면은 바뀌게 됩니다. 서로 용서를 빌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며 그래도 마지막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는 따뜻함을 느끼면서 정수는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오늘은 아버지 날입니다. 사회에서, 직장에서, 비즈니스에서의 성적보다 가정에서의 아버지 성적은 얼마나 되는 아버지들은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독을 이해해 주는 가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