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도 주초부터 며칠간 수양관에 다녀왔습니다.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오래 전 교단(CRC)애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침묵 수련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켈리포니아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교단 웹페이지에 특이한 광고가 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침묵수련회였습니다. 프로그램이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23일 수련회를 하는 동안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녁에만 두 번 강의가 있고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수련회 기간동안 하는 일이라고는 자유스러운 산책과 말씀 묵상, 그리고 독서가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말을 하면 안됩니다. 수련회에 참석한 동료 목사들과는 눈 인사만 나눌 수 있지 대화를 하는 것은 금기 사항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광고가 나기 전까지 침묵 수련회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수련회는 보통 23일이나, 34일을 합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배가 5-6차례 있습니다. 특강도 있고 세미나도 있습니다. 저녁에는 기도회도 있습니다. 조별로 나누어져서 서로를 소개하고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사실 수련회는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나누는 것이 수련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수련회를 다녀온 학생들은 하루 이틀은 잠만 잡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침묵수련회는 보통 수련회에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하던 수련회인 것입니다. 저는 아주 흥미로운 마음이 들어 곧바로 신청을 하고 수련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수련회 접수를 하는 자리에서도 말은 한 마디도 쓰지 않았습니다. 명찰을 받고는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방도 침묵수련회 방침에 맞게 독방이었습니다. 주의 사항은 오직 한 가지 수련회 기간 내내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도 아주 긴급한 응급상황에서만 사용하지 일반적인 통화를 모두 중단하라는 당부를 받았습니다. 가급적 전화기가 꺼놓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저는 너무 많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세상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긴급하게 해야 하는 일들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늘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에서도 자유로워졌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고 전화 통화와 이메일을 해야 하는 의무도 사라졌습니다. 오직 말씀만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도 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 기도를 했습니다. 말씀 속에 계신 주님이 더 가까이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 속을 홀로 산책하면서 나무와 새들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연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경험했던 수련회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수련회가 바로 침묵수련회였습니다. 그 수련장을 나오면 1년에 한 번씩은 혼자라도 침묵 수련회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그 결심을 지켜본 적은 없었습니다. 침묵 수련회가 자체가 없는 것도 이유이고, 제 목회 생활이 그렇게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제 몸에 찾아온 이상은 저로 하여금 침묵 수련회를 혼자서라도 하라는 메시지로 들려왔습니다. 월요일 오후에 수양관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에 교회로 내려왔습니다. 그 기간 동안 긴급한 전화를 몇 통 받은 것 외에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오직 하늘만이 보이고 구름이 보였습니다. 산에는 아직도 하얀 눈이 덮여있는 싱그러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121:1-3). 시편의 이 말씀만이 저의 눈에 귀에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아무 말도 안하니까 복잡하던 생각도 사라졌습니다. 새소리가 들리고 나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늘 설교를 하고 상담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 말을 많이 하던 저에게 하나님은 잠시 침묵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말을 하면서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듣지 못하던 것을 들으라는 축복의 시간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