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빌리아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는 그야말로 지옥행군을 해야만 하는 곳이다. 해발 3천미터의 높고 험한 산을 넘어야 한다. 산 골짜기에서 몰아치는 눈보라는 몸과 마음을 꽁꽁 얼아붙게 만든다. 강도떼도 들끓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가요한이 놀라서 고향으로 돌아갈 정도로 타우러스 산은 넘기가 어려운 산이다. 거리도 120마일이 넘는다. 하지만 바나바와 바울은 그런 장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넘어 도착한 곳이 바로 비시디아 안디옥이다. 성경에서는 종종 단 한 줄에 두 지역을 같이 놓고 설명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우리들은 아주 가까운 곳이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마치 바로 옆동네를 지나가는 것처럼 보고 있다. 하지만 성지순례를 통해서 그 두 지역을 직접 가보면 얼마나 멀고 험준한 산을 건너가야 하는 지를 보고는 남다른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행13:14). 얼마나 간단한 기록인가? 버가에서 더 가서 안디옥에 도착했다는 설명 하나로 두 지역을 그리고 있다. ‘더 나아가’라는 말 한마디에 목숨을 건 여러 날의 고난이 들어있는 것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은 사도행전 13장의 거의 모든 장을 할애한 복음에 대한 핵심적인 설교를 하게 된다. 바울의 복음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비수처럼 꽂히게 되었다. 설교를 마치자 청중들은 다음 안식일에 다시 한 번 설교를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음 안식일 집회에는 거의 모든 비시디아 안디옥 시민들이 다 모여들어 바울의 복음 설교를 듣게 되었다. 



수리아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의 차이


세계를 통일했던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BC 323년에 갑자기 병사하게 된다. 그의 나이 불과 33세였다. 그의 아들 알렉산더 2세가 왕이 되어 잠시 통치를 하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인 카산드로스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만다. 알렉산더의 서자인 헤라클레스도 동생인 필리포스도 모두 살해당한다. 결국 알렉산더가 죽은 지 불과 14년 만에 알렉산더 왕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BC 301년부터 알렉산더의 장군 네 사람이 제국을 분할에서 통치하게 되었다. 가장 야욕이 많았던 카산드로스는 제국의 본산이요 중심지인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지배하게 된다. 리시마코스 장군은 소아시아와 트로키아를 분할받았다. 셀레우코스에게는 제국 중 가장 넓은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가 돌아갔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게 된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였다. 그들은 각기 다른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네 개의 왕국 중 카산드로스의 통치가 가장 짧았다. 그는 후계자 없이 왕국을 세운 지 몇 년 후에 죽고 만다. 결국 그리스 가장 옆에 있던 리시마코스가 그리스 지역까지 통치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4년 뒤 리시마코스는 셀레우코스와 싸우다가 전사하고 만다. 그의 영토 대부분이 셀레우코스에게 넘어가게 된 것이다. 결국 셀레오코스가 다스리는 제국과 프톨레마이우스가 통치하던 왕국이 로마가 세계를 재패할 때까지 300년 가까이 존속하게 된다. 셀레우코스는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 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그는 시리아 안에 안티오크(안디옥)라는 새로운 도시를 창건하고 그 곳을 제국의 수도로 삼게 된다. 바로 그 안디옥이 바울과 바나바가 처음 목회를 했으며 선교사를 이방 지역에 파송한 그 안디옥이다. 셀레우코스는 왕조를 세우면서 자기의 아버지인 안티오쿠스를 기념하기 위해 제국 내에 16개의 도시를 건설하고 그것을 모두 안디옥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성경에는 안디옥이라는 지명으로 그 중 두 군데가 등장한다. 제국의 수도이며 이방 교회가 처음 설립된 안디옥은 다른 토를 달지 않고 그냥 안디옥이라고 불리워졌다. 단지 다른 지역과의 구분을 위해 종종 수리아 안디옥이라 불렀다. 오늘 바울이 복음 증거를 위해 방문한 안디옥은 비시디아 지방의 도시이기에 비시디아 안디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비시디아 주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BC 300년 경 셀레우코스에 의해 조성된 비시디아 안디옥은 중앙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급속도로 발전해 가기 시작했다. 각 지역에서 몰려든 헬라인들, 부르기아인들, 또한 유대인들까지도 속속들이 정착해 갔다. BC 200년 경에는 2천 세대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기록도 있다. 로마가 통치를 하기 시작한 BC 25년 경부터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주변 도시들을 병합해서 퇴역 군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도시를 더욱 확장시켰다. 비시디아 안디옥 출신의 사람들이 로마 군대와 행정 조직의 요직을 차지하였고 이들 중에는  로마 최고 의결기관인 원로원에 진입하는 일도 있었다. BC 6년에 건설된 에베소에서 시리아까지 연결되는 동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지점에 위치하게 되면서 상인들에게도 엄청난 매력을 주는 도시로 계속 성장해 갔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만 해도 무려 115에이커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였다. 안디옥 지역 전체는 540에이커에 이르는 비시디아 주의 메트로폴리스가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전도를 하러 방문을 한 것이다. 바울의 최초 선교 기착지였던 구브로 섬의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의 친족들이 이 도시에 살고 있었다. 서기오 바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이곳 박물관에는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한 서기오 바울이 친척들을 전도하기 위해 바울에게 이 도시를 소개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의 명 설교가 울려 퍼졌던 곳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자 마자 안식일을 맞아 유대인 회당을 찾았다. 당시 그 도시에는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모여 사는 도시마다 반드시 회당을 설립했다. 그 회당을 통해서 늘 모임을 갖고 율법을 공부하고 자녀들을 교육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바울의 선교를 어디를 가나 이 회당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신 것처럼 바울 역시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이날 바울은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당당하고도 확신있게 선포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게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셔서 부활시키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고 외쳤다. 복음의 핵심을 간결한 문체로 생명력있게 증거한 것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설교이다. 이 설교가 기록으로 남은 바울의 첫 설교가 되었다. 회당이 모인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에 흠뻑 빠져들었다. 설교가 끝나자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했다(행13:42). 다음 안식일까지 바울의 소문이 비시디아 안디옥 전 도시에 퍼져나갔다. 다시 바울이 말씀을 증거하는 시간이 되자 온 시민들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이게 된 것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영적 지진이 일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지만 바울이 말씀을 전했던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터로 추정되는 자리에 서면 바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발견된 유적들


지금은 과거처럼 비시디아 안디옥이 큰 도시가 아니다. 또한 터키가 모슬렘 국가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유적지 발굴이 활발하지 못하다. 이 도시의 유적지 발굴은 1913년, 1924년에 부분적으로 진행되다가 1979년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재개가 되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과거에는 워낙 큰 도시였기 때문에 로마시대의 많은 유적들이 발견되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아우구스투스 신전, 야외극장, 도시 외곽에서 물을 끌어들인 수도관, 도시 성벽의 흔적, 도시 광장, 아치 길 등이 발견되었고 지금도 계속 발굴을 하는 중이다. 특히 바울이 설교한 회당 터위에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던 옛교회의 모습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더 다가온다. 바울이 이 도시를 떠난 후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공동체를 떠나서 처음으로 독자적인 교회를 세우기에 이른다. 도시가 계속 발전했던 거처럼 교회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비시디아 안디옥 지역을 통괄하는 감독이 있었으며 AD 325년의 니케아회의부터 소아시아에서 개최된 모든 종교회의에는 그 감독이 지역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열매가 오랜 세월을 두고 넘치게 맺혔던 곳이 바로 비시디아 안디옥이었던 것이다. 말씀을 사모하면 역사가 일어난다. 말씀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누구보다도 사모했던 비시디아 안디옥의 처음 교인들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