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과 복이 없는 사람을 대조해서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르는 명칭도 달라집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의인’ 복이 없는 사람은 ‘악인’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복이 없는 악인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1:4). 악인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지금까지 묵상한 1-3절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악인들의 꾀를 따라갑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게 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뿌리치고 뛰쳐나올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그것을 이길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 풍랑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곧 뒤집힐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아무리 노를 젖고 물을 퍼내어도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배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주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시지 않으십니까?” 그때 주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8:26). 제자들이 왜 무서워했습니까? 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풍랑때문이 아닙니다. 거센 바람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풍랑도 이기고 바람도 이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세상 어떤 유혹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믿음만 있다면 풍랑은 곧 잔잔해질 것입니다. 주님은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셨습니다. “바람아 잔잔하라, 파도여 고요하라” 그러자 그렇게 뛰놀던 바람과 파도가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말씀을 능력입니다.


  이런 말씀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 바로 악인입니다. 악인은 첫째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겨는 처음에 쌀과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보기에 똑같습니다. 색깔도 같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한 번 불어오면 그 차이는 금방 드러나고 맙니다. 알곡은 묵직합니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하지만 겨는 금방 날라가고 맙니다. 속이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지킬 힘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흉내만 낸 것입니다. 지금 이 모습은 복 있는 사람의 그림인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비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물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근원에 뿌리가 직접 닿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가뭄에도 그 나무는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겨는 어떤 수분도 없습니다. 결국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 가지가 뻗어 담까지 넘습니다. 복이 흘러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바람에 나는 겨는 어떤 열매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힘을 주지 못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혼자서만 잘난체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바람만 불면 그 실상을 드러나고 맙니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알곡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시1:5). 심판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심판 자리에 서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주님이 오시는 재림때만 마지막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에게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사실 그 심판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죽는 날이 바로 우리 개인의 심판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악인입니다. 하지만 그 심판을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나의 힘으로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견디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모든 형벌을 다 받으셨다는 믿음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판을 견디게 해줄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처럼 붙잡아야 합니다.


  세 번째 악인은 의인들의 모임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시1:5하). 의인들의 모임은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심판을 견딘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바로 천국생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절대 그 모임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이 상황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옥에 가 있는 부자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부자는 너무 목이 날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사로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지를 부탁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보게 됩니다. 부자는 얼마나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었을까요? 매일 잔치가 끊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부유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 앞에서 쩔쩔맸습니다. 하지만 천국에서 그의 이름은 누구도 알지를 못합니다. 단지 부자라는 사실밖에는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나사로는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거지였습니다. 몸도 성치가 않았습니다. 그는 일할 힘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결국 부자집에서 남겨지는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울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천국에서 얼마나 분명하게 불려지는 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는 이름을 몰랐지만 천국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품에 안겨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큰 축복을 이야기할 때 쓰는 말입니다. 천국에서는 완전히 역전이 된 것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 의인의 길을 걸어갔느냐 악인의 길을 걸어갔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따르는 삶을 살았느냐 아니면 내 생각만 뜻만 가지고 살았느냐입니다.


  어느 주일학교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전해 주었습니다. 교훈도 너무나 선명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복을 받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부자와 같이 된다. 하지만 남들보다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도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을 수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이 세상에서 받는 가장 큰 축복이다. 아이들의 선생님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끝난 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너희들은 부자가 되고 싶으니 아니면 나사로가 되고 싶으니?”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나사로요!’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다시 묻습니다. “너는 왜 대답을 안 하지? 부자가 되고 싶어 나사로가 되고 싶어?” 그러자 그 아이가 자기의 솔직한 대답을 합니다. “선생님, 저는 살아서는 부자처럼 되고 싶고, 죽어서는 나사로처럼 되고 싶어요” 우리가 말은 안 하지만 우리 모두 솔직한 마음 아닐까요? 하지만 예수 믿는 다고 다 가난한 사람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따라 산다고 거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의 받는 축복을 얼마나 강조하는 지 모릅니다.


  복이 있는 의인에게 나타나는 결과를 시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시92:12-14).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번성할 것입니다. 종려나무는 곧고 높게 자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9:14에서는 이스라엘의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종려나무에 비유하면서 낮은 신분의 갈대와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줄기의 꼭대기 부근에는 2-3m의 깃털모양의 나뭇잎들이 퍼져 자라게 되는데, 줄기와 나뭇잎이 갈라지는 지점에 열매가 맺힙니다. 종려나무는 매년마다 새로운 줄기가 나오는데, 새로 나온 어린 가지들은 접혀져서 마치 막대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5년 정도 자라면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데 봄에 나무에 꽃이 피고 여름 하반기에 열매가 익기 시작합니다. 열매의 길이는 2-4cm 정도이며, 달고 육질의 과실 살을 가지고 있으며 씨가 큰 것이 특징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쭉쭉 뻗어갈 것입니다. 워낙 곧게 뻗는 나무라서 아주 귀한 목재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솔로몬 성전 건축에 사용된 나무도 모두 레바논 백향목입니다. 의인은 늙어도 여전히 열매를 맺습니다. 그 진액이 마르지 않습니다. 세월이 가도 빛이 바래는 법이 없습니다. 늘 청청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겨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뜰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잘해서 얻은 부가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받은 건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의인의 놀라운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내려주실 것입니다. 2017년도는 우리 모든 교우들이 이런 의인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